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

    혜소국사와 칠현

    혜소국사는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 때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하였다. 1054년 83세로 입적했다.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던 무렵 인근에 포악한 도둑 7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을 교화하여 이 7명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다 하여 칠현사라고 불리운다.

    칠장사 나한전 앞에는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혜소국사비(보물488호)가 있는데,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어사 박문수

    어사 박문수(1691년-1756년)는 호가 기은이고 본은 고령이다.
    생지는 지금의 천안시 입장면이고, 묘는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석산에 있다
    1723년 증광시 병과 진사과에 급제를 하여 벼슬길에 나간후 병조판서 호조판서 예조판서및 경상관찰사 함경관찰사를 역임하였고 특히 경상도,충청도 암행어사를 제수받어 맹활약을 하여 오늘날 어사 박문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칠장사와는 박문수가 과거에 급제할 때 맺어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문수가 32세가 되도록 과거에 급제를 못하고 있었는데, 1723년에 실시하는 증광시에 응시하러 갈 때 이야기다.
    박문수 어머니가 내일 과거길을 떠나는 아들을 불러놓고 “문수야 내가 들으니 칠장사에 나한전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너도 이번에 급제를 하도록 은덕을 내려달라고 빌고 가거라.”라고 말씀을 하였다.
    이에 문수가 한양 과거길에 칠장사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지내게 되는데 그날 꿈에 나한전 부처님이 나와 과거에 나올 시제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총 여덟 줄 중 첫째 줄부터 일곱째 줄까지를 알려주고, 나머지 한 줄은 스스로 생각하여 쓰도록 하라고 일러주고 사라졌다.

    박문수가 한양에 올라가 과거날 성균관 과장에서 시제를 접하고 보니 칠장사 나한전에 빌고 꿈속에서 얻은 시험 문제가 고스란히 나와 일곱문장을 쓰고 나머지 한문장은 오랜 생각 끝에 단발초동농적환 이라고 지어냈더니 이글이 제일 잘 된 문장이라 하여 병과 진사과애서 장원을 급제를 하여, 이른바 몽중등과시라 일컬어진다.
    이는 지금부터 286년 전 일로, 오늘 날까지도 몽중등과시의 명성이 이어져 칠장사에는 각종 시험 응시자나 가족들이 많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아래는 몽중등과시의 전문이다.

    여기까지는 부처님이 꿈속에서 가르쳐 준 후 나머지 한줄은 박문수에게 지어서 맞추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다음 여덟 번 째 글은 박문수가 지은 것이다.

    이상이 박문수가 과거 볼 때 제출하여 장원 급제를 한 글로서 칠장사 나한전에 빌고 그 날 밤을 칠장사에서 자면서 꿈속에 부처님의 계시를 받은 글이다. 이글이 오늘날 까지 전하여 오는 유명한 박문수 “몽중등과시” 이다.

    병해대사와 임꺽정

    병해대사는 백정 집안에 태어나 갖바치를 생업으로 삼다가 젊어서 주역 등 역술 공부를 하며 도인으로 살다가 노년에 칠장사에 들어와 안주를 하며 법명을 병해라 하고 생불(生佛)의 덕성과 위업에 달하였다.
    임꺽정이 소년시절에 대사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고 뒷날 임꺽정과 그의 무리들은 칠장사를 정신적 의지처로 삼게 된다.

    임꺽정은 명종때 의적으로서 1562년 토포될 때까지 주로 지금의 개성과 황해도 근방에서 화적질을 하던 실제 인물로 후에 탐관오리를 벌하고, 힘없는 백성을 도왔다 해서 의적 임꺽정으로 전하여 오고 있다.
    칠장사에는 한참 화적질을 할 때 어려서 스승으로 모셨던 병해대사를 찾아 칠장사에 드나들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병해대사가 육십이 넘어 칠장사에 안거하면서 제자인 임꺽정에게 서신을 보내고 그 후 임꺽정이 찾아오게 된다.
    임꺽정은 병해대사가 죽은 뒤 유언을 받들어 목수를 청해 많은 시주를 하고 약 50cm의 앉아있는 목불을 조성 하였는데 그 실물이 지금 칠장사에 모셔져 있으며 목불이름이 꺽정불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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